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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우의 Episode] 도환- 민호가 독립리그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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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4-17 23:27 조회4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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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우의 Episode] 도환- 민호가 독립리그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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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은 평범한 이들에겐 쉬는 날이다. 하지만 야구계는 아니다.  
프로야구는 당연하고 고교·대학팀도 토·일 주말리그 경기를 치른다.  대신 월요일이 휴무일이다.  
그런데 같은 야구지만 스케줄이 일반인과 같은 이들이 있다. 바로 독립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다. 
저니맨, 연천 미라클,파주 챌린저스,의정부 신한대 피닉스로 구성된  KIBA 드림리그와 고양 위너스,성남 블루팬더스,양주 레볼루션으로 꾸려진 경기도 챌린저 리그는 주말은 쉬고 월요일에 게임을 한다. 
야구장 섭외 문제도 있고 프로 스카우트에게 플레이를 보여주기 위해선 야구 없는 월요일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14일(토) 예정되었던 고교&대학 주말리그는 비로 인해 전 경기 취소됐다. 금요일이면 주말에 어느 지역의 어떤 게임을 볼까 고민했으나 이 날 만큼은 일찌감치 전해진 전국의 비 예보에 마음을 접고 허락된 휴일을 만끽하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2명의 선수에게 연락해 약속 시간을 잡았다.  
만남의 주인공은 올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1999년생으로 현재 독립리그 소속의 김도환-김민호다. 

 

* 갈 곳 잃은 좌투좌타 외야수

 

야구를 하는 고교 3학년의 진로는 크게 프로와 대학으로 나뉜다. 
물론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 직면한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자의반 타의반 운동을 그만 둔다. 
그 중 몇 몇은 2년제 대학으로 들어가  기회를 엿보기도 한다.  
이는 2년 뒤 한 번 더 신인 지명회의에 나설 수 있고 그렇지 않음 4년제 편입의 길도 열려 있기 때문이다. 

 

김도환(선린인터넷고 졸)과 김민호(광주동성고 졸)은 프로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이후 전국의 대학에 원서를 냈으나 돌아온 것은 불합격 통보였다. 2년제 대학으로 눈을 돌릴 만 했다.

“굳이 대학을 가서 야구를 해야 하나 싶었다. 요즘 수업을 다 들어야 한다고 하더라. 실력이 부족한 내 입장에선 두 가지를 하면서 프로에 갈 수 있을 거 같지 않았다. 부모님과 의논 끝에 대학진학을 포기했다.”(김도환)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타율이 괜찮았는데 중반 이후부터 부진했다. 6개 대학을 지원했는데 다  떨어졌다. 워낙 기록이 별로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2년제 대학 일반전형으로 지원을 해 붙었는데 또 다른 2년제도 합격하면서 상황이 꼬이고 말았다. 장학금이라도 받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이도저도 아닌 거 같아 독립리그로 눈을 돌렸다.” (김민호)

김도환은 지인들의 소개로 고양 위너스 입단을 했고 김민호 역시 합격자 발표가 끝난 뒤 우왕좌왕하다 파주 챌린저스 유니폼을 입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좌투좌타 외야수라는 점이다.


 * 대학 의미 없다 김도환, 프로입성이 최종 목표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김도환은 홍은중학교 시절 잠깐 투수를 하다 고교 진학 후 부터는 외야수로 활동했다.  
“왼손잡이라 내야는 자리가 없어 자연스레 외야로 갔다. 처음엔 방망이만 집중할 수 있고 수비 부담도 덜해 좋았다. 한동안 좌타자가 인기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엔 우타자를 선호하는 분위기다. 솔직히 6개 대학 중엔 한 곳 정도는 될 줄 알았다.”

김도환은 1학년 때부터 전국대회에 간간히 모습을 비췄고 2학년 땐 강한 어깨와 정확한 송구 능력을 지닌 서울권의 몇 안 되는 외야수 중 한 명으로 손꼽혔다.

 


 


지난해 개인 성적은 18경기 출전 67타수 24안타 타율 0.358 11타점 6도루.
기록만 놓고 보면 지원한 대학 중 절반 이상은 합격되기에 충분했다. 
과거처럼 선수 선발이 감독에게 권한이 주어졌더라면 앞을 다퉈 데려가겠다는 팀이 줄을 섰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감독이 뽑지 않는다. 포지션 별 인원 정도만 전달하는 정도이고  온전히 기록이나 수상 경력만으로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 
물론 대학 입학자들의 기량이 부족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스포츠는 단순히 기록이나 성적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다.  
지도자는 투타가 가능하거나 내외야를 아우를 수 있는 혹은 타자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투수로도 성공 가능한 그런 선수들을 선호한다. 안타를 기록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타격 밸런스가 괜찮다 싶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수비 실책이 많은 것은 불가능 한 타구를 잡으려다 생긴 어쩔 수 없는 상황임에도 그것이 선수의 자질로 치부되는 등 직접 플레이를 보지 않고 숫자나 상장만으로 뽑는 것이 요즘 대학의 현실이다.

 


 

 

“운이 없었다.  주말리그에서 그 흔한 개인상 하나 받지 못했고 팀 성적도 좋지 않았다. 처음엔 실망이 컸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야구를 그만 두겠다고 생각 한 적 없다.” 
평소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의 김도환은 말을 아끼면서도 자신의 주관을 정확하게 전달했다.

 

* 쌕쌕이 김민호, 고교 시절 노력이 부족했다   

 

김민호의 성적은 김도환과 비교하면 평범하다. 
29경기 출전 86타수 22안타 타율 0.256 11타점 12도루 타율대비 찬스에 강한고 주루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다. 스스로 프로는커녕 대학도 힘들 거라 추측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민호는 전남 신안군에서 태어나 목표에서 자랐다. 육상의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이를 알게 된 광주 지역 모 코치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했다.   
“아들을 위해 가족 전체가 광주로 이사를 갔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 때 운동을 그만 두고 일반 중학교로 갔다가 다시 했다. 그때는 그냥 놀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춘기를 제대로 겪은 것 같다.  왜 그랬을까 후회된다. 그래서 지금 이 정도에 그친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한 번 숨고르기를 한 것에 조급함을 느낀 나머지 오버 페이스를 했고 그  결과 중3 때는 왼쪽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그래서 고 1때 쉬고 2학년 때부터 게임을 뛰었다. 작년 우리 팀 전력이 별로 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팀원 간의 단합만큼은 최고였다. 황금사자기 4강 진출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내겐 독이 됐다. 그 대회 이후 개인 성적이 바닥을 쳤다.” 
김기훈-김의준 두 투수의 호투와 불붙은 타선을 앞세워 4강까지 오른 동성고는 덕수고와 준결승전에서 연장 10회 승부치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4-5로 석패했다. 
당시 김민호는 15타수 7안타 타율 0.467 4타점 2도루의 맹활약을 펼치며 스카우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팀과 함께 그는 더 이상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할 만큼 했다는 안일함이 있었다. 잘하자 마음만 먹었지 몸은 따로 움직였다. 어이없는 볼에 당하고 그러면서 타율을 까먹었다.”

김민호는 스스로 어영부영 중요한 시기를 흘려보냈다고 했다. 
누구나 후회 하고 반성하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문제는 깨달음 뒤의 지속력이다. 시즌이 시작된  4월. 뭔가 해보자 하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꿈틀 거릴 시기다. 겨우내 갈 곳 없어 방황했던 그때의 절박함을 잊어선 안 된다.

 


 

 



 

 

*기대 이상 빡세고 체계적인 독립리그, 오길 잘했다

 

김도환-김민호는 같은 그라운드에서 만난 적이 없다. 서로 리그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르지만 큰 어려움 없다. 딱히 불만도 없다. 숙소에서 함께 생활하는 선배님들과 또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편인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굳이 리그를 둘로 나눌 필요가 있나 싶다. 저쪽 리그는 TV중계를 해주더라 부럽다. 우리도 해 주면 좋겠다.” (김도환) 


 

 

 

“팀을 들어가면서 가장 어릴 거 같아 걱정을 좀 했는데 20살 동갑내기가 5~6명 정도 있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았다. 고등학교 땐 시키는 대로 운동을 했지만 여기는 각자 알아서 하는 분위기다. 누가 지켜보고 뭐라 하지 않지만 다들 열심히 한다. 많이 반성하고 배웠다. 회비가 부담스럽긴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김민호)

김민호는 주말에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월 90만원의 회비는 부모님이 조달하기 때문에 용돈 정도는 자신이 벌어야 한다. 식사는 구단에서 제공을 해준다.

 


 

 

김도환이 소속된 고양 위너스는 월 회비 60만원. 대신 삼시 세끼 중  한 끼(저녁)는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개인 용돈이 제법 들어가지만 올 한해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고교 동기 중 절반 이상이 야구를 그만 두고 입대를 준비하거나 다른 일을 찾고 있다. 대학에  들어간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부하랴 연습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하더라. 그들에 비해 난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셈이다. 물론 가능성은 낮지만 결코 하지 않겠다.” (김도환) 
 
* 프로도 주목하는 독립리그 젊은 피  


독립리그 초창기엔 방출된 이들 혹은 취업이 막힌 대졸들이 주축을 이뤘다. 프로 2.3군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그 자체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독립리그를 찾는 이들의 나이대가 어려지고 있다. 굳이 대학을 나와야 하는 것도 아닌 이상 괜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또한 한 살이라도 어린 유망주를 뽑고자 하는 프로 구단의 방침도 한몫하고 있다.

“주말은 고교 뿐 만 아니라 대학 게임도 한다. 스카우트 입장에선 자원이 더 풍부한 고교 쪽으로 몰릴 수 밖에 없다. 과거엔 대학에도 눈에 띄는 선수들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엔 한 팀에 한 명도 없는 경우도 태반이다. 대학 가서 기량이 늘어야 하는데 반대로 과거보다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연습 부족에서 비롯된 결과다.” 
서울권 모 구단 스카우트는 앞으로 시간을 쪼개 월요일엔 독립리그 게임 현장을 찾을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실패를 맛 본 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똘똘뭉친 이들도 둘러 보고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다. 
다만 부담도 없지 않다고 털어놨다.   
“독립리그에로 눈을 돌리면 대학 쪽 반발이 클 것이다. 대학야구를 살려야 한다는 여론도 거셀 것이 분명하고 하지만 프로가 원하는 것은 학벌이 아니라 실력이다. 한 번 좌절을 겪고 아픔을 겪은 이들은 확실히 간절함이 있고 야구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다르더라. 육성선수로 입단해 성공한 사례도 많지 않은가?  분명 우리 말고도 다른 구단도 독립리그를 주목할 것이다.”

 


 

 

* 무모한 도전?  젊기에 가능하다

 

스무 살이 넘은 남자라면 군 문제는 현실이 된다. 이 부분에 대해 둘은

‘1년 정도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빨리 다녀와 다시 도전 할 생각’ 이라고 했다. 
100세 인생 아닌가? 서른 전까지 꿈꾸는 일에 도전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예 꿈이 없는 청춘보다 훨씬 낫다.   
일찌감치 군 생활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세상을 알게 된다는 점에서도 반길 일이다. 물론 이들의 외침이 공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프로라는 화려한 무대를 갈망하는 것 자체가 무모하다 여길 수 도 있다. 거액의 계약금을 받으며 지명된 선수들도 1군 입성은커녕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꿈을 접기엔 아깝다.  야구는 기술의 스포츠다. 10년 이상 갈고 닦은 특별한 능력을 이른 나이에 포기 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대학 불합격이 인생의 실패로 직결되는 세상이 아니다. 야구는 더욱 그렇다. 
정수빈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는 김도환, 이치로가 롤모델이라는 김민호. 현재 그들이 서 있는 자리는 불안하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꿈을 잃지 않고 전진하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아니한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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